임금님이 두고 온 아이

일본에서는 현대를 가리켜 '삼무(三無) 시대'라고 한다.
무관심, 무책임, 무감동의 시대라는 말이다. 굳이 일본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현대뿐 아니라 시대를 망라하여 적용할 수 있다. 그만큼 사랑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랑이 식어가는 것은 그만큼 세상의 끝이 가까워 온다는 징조이다. 사랑이 사라진 이 사회를 고치는 방법은 없을까?

임금이 한 고을을 암행하였다. 고을 사람들은 사랑이 없고 웃음도 없으며 더구나 그러한 그들을 고칠 방도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금은 고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엄한 명령을 내렸다.

"짐이 너희 고을에 나의 사랑하는 아이를 놓고 가니 나를 본 듯 아이를 대하고 키워라. 그렇지 않으면 임금의 명령을 어긴 죄를 묻겠노라."

임금은 끝내 그 아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왕자인지 공주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고을 사람들은 임금의 아이가 누구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도 아이만 만나면 웃고 잘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 고을의 남자아이들은 왕자처럼 대우를 받았고, 여자아이들은 공주처럼 대우를 받았다.

사람들이 자기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자 어른들도 서로에게 친절하고 온 고을에 사랑이 찾아오고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도 임금은 자기의 아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 고을의 한 사람이 임금을 찾아가,
"임금님, 임금님의 명령을 따르다 보니 저희 고을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왕의 자녀가 누구인지 말씀하옵소서. 궁으로 모실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그러자 임금이 허허허 웃으며,
"짐이 그곳에 두고 온 아이는 '사랑'일세. 그 씨앗이 그대 고을에 넓게 퍼지지 않았는가. 사랑이 그토록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데 어떻게 데려오나. 그냥두게."

- 톨스토이 얼굴이 빨개진 이유 / 양창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