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5개월만에 실적 '쑥'
1주일 한번 봉사진료 활동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게 아닌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전파하는 보험왕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해 8월, 푸르덴셜생명에 입사한 라이프플래너 김상환 씨. 1999년에 서울치대를 졸업하고 2004년 경기도 분당에 치과를 개업해 올해 초까지 '선생님', '원장님' 소리를 듣던 치과의사다.
그가 푸르덴셜생명에 라이프플래너가 됐다고 주변에 알렸을 때 "병원이 망했냐?", "임플랜트 심다가 사고쳤냐?" 등등 주변의 반응은 '너 그거 왜 하냐'였다. 심지어 보험사 면접 때 면접관조차도 "당신 진심이냐, 할 수 있겠느냐?"며 만류했다.
치과의사의 대외적 이미지나 사회적 자부심이 땅에 떨어지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등 직업에 대한 갈등이 극에 달했을 무렵, 한 친구의 권유로 보험 관련 세미나를 들은 날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김 씨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꿈, 가족의 행복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이 거기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8개월여의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보험에 입문했다.
이 일에 뛰어들고 하루 4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다는 김 씨. 자주는 아니지만 험한 소리도 듣고 문전박대도 당한다. '원장님', '선생님' 소리만 듣다가 '나가라', '필요 없다'는 소리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요즘처럼 인생에서 행복했던 시절이 없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그는 "솔직히 수입도 처우도 예전만 못하지만 보험은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세상과 삶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내게 딱 맞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내심 못 미더워하는 기자를 보며 "장난으로, 심심풀이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치과까지 후배에게 미련 없이 넘겼죠"라며 웃는 김 씨. 보험을 시작한 뒤 고객이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발품을 팔았고 하루를 열흘같이 살았다.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실적판이 말없이 이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실적 그래프를 보니 1월 4주간 30여건이 넘었다. 동료들의 2~3배에 이르는 압도적인 실적.
이러다 보니 입사 5개월여가 지난 현재 한숨을 내쉬던 부모님들도, 내심 불안했지만 티를 못 내던 아내도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전파하는 보험왕'이 되겠다는 그의 열정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실적표를 보며 치과계 동료나 선·후배들이 많이 도와주시나 봅니다는 질문에 그는 "웬걸요.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수입이 10분의 1로 줄었다'라고 기사가 와전돼 나간 뒤 동료나 선·후배들로부터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많이 벌었냐'는 항의전화 받기에 바빴고 회사에서는 '우리가 그것밖에 안주냐'는 핀잔을 듣는 등 본의 아니게 양쪽에 미안하게 됐다"고 머쓱해 했다.
보험에 살리라 외치는 김 씨지만 치과의사 직함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회사의 양해를 얻어 서울 신교동 푸르메재단이 운영하는 '푸르메나눔치과'(02-720-7002 www.purme.org)에서 일주일에 하루 중증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봉사진료를 한다.
그는 "앞으로도 생계가 아닌 봉사를 위한 치과진료를 위해서 지금 하는 일에 더욱 더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치의신보/사람들, 2008.01.28 -
1주일 한번 봉사진료 활동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게 아닌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전파하는 보험왕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해 8월, 푸르덴셜생명에 입사한 라이프플래너 김상환 씨. 1999년에 서울치대를 졸업하고 2004년 경기도 분당에 치과를 개업해 올해 초까지 '선생님', '원장님' 소리를 듣던 치과의사다.
그가 푸르덴셜생명에 라이프플래너가 됐다고 주변에 알렸을 때 "병원이 망했냐?", "임플랜트 심다가 사고쳤냐?" 등등 주변의 반응은 '너 그거 왜 하냐'였다. 심지어 보험사 면접 때 면접관조차도 "당신 진심이냐, 할 수 있겠느냐?"며 만류했다.
치과의사의 대외적 이미지나 사회적 자부심이 땅에 떨어지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등 직업에 대한 갈등이 극에 달했을 무렵, 한 친구의 권유로 보험 관련 세미나를 들은 날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김 씨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꿈, 가족의 행복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이 거기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8개월여의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보험에 입문했다.
이 일에 뛰어들고 하루 4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다는 김 씨. 자주는 아니지만 험한 소리도 듣고 문전박대도 당한다. '원장님', '선생님' 소리만 듣다가 '나가라', '필요 없다'는 소리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요즘처럼 인생에서 행복했던 시절이 없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그는 "솔직히 수입도 처우도 예전만 못하지만 보험은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세상과 삶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내게 딱 맞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내심 못 미더워하는 기자를 보며 "장난으로, 심심풀이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치과까지 후배에게 미련 없이 넘겼죠"라며 웃는 김 씨. 보험을 시작한 뒤 고객이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발품을 팔았고 하루를 열흘같이 살았다.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실적판이 말없이 이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실적 그래프를 보니 1월 4주간 30여건이 넘었다. 동료들의 2~3배에 이르는 압도적인 실적.
이러다 보니 입사 5개월여가 지난 현재 한숨을 내쉬던 부모님들도, 내심 불안했지만 티를 못 내던 아내도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전파하는 보험왕'이 되겠다는 그의 열정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실적표를 보며 치과계 동료나 선·후배들이 많이 도와주시나 봅니다는 질문에 그는 "웬걸요.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수입이 10분의 1로 줄었다'라고 기사가 와전돼 나간 뒤 동료나 선·후배들로부터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많이 벌었냐'는 항의전화 받기에 바빴고 회사에서는 '우리가 그것밖에 안주냐'는 핀잔을 듣는 등 본의 아니게 양쪽에 미안하게 됐다"고 머쓱해 했다.
보험에 살리라 외치는 김 씨지만 치과의사 직함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회사의 양해를 얻어 서울 신교동 푸르메재단이 운영하는 '푸르메나눔치과'(02-720-7002 www.purme.org)에서 일주일에 하루 중증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봉사진료를 한다.
그는 "앞으로도 생계가 아닌 봉사를 위한 치과진료를 위해서 지금 하는 일에 더욱 더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치의신보/사람들, 2008.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