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세상에서 가장 좋고
무조건 엄마를 믿고 의지하는
작고 연약한 아기 나의 짝사랑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젊은 시절의 열병 같은 짝사랑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스무살 무렵 그 싱싱하고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던 그 시절에 밤잠을 설쳐가며 누군가를 그리워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치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순수하기도 했던 그 시절.
그저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들.... 그런데!
지금 이십여 년이나 지난 이 나이에, 나에게 그런 짝사랑이 또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화내고 우는 모습도 사랑한다. 때로는 '그'가 나의 단잠을 깨우고, 나를 무척 힘들게도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그저 주기만해도 좋은, 곁에 있기만 하면 좋은, 너무나도 순수한 것이다.
나는 '그'의 생김새, 걷는 모습, 웃는 모습, 소리지르고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도 좋다. 맛있는 음식, 좋은 클래식 음악, 신선한 공기, 나무가 많은 공원.... 어느 곳에 있어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
나는 완전한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나를 다시 달콤한 짝사랑에 빠지게 한 그대, 그는 바로 내 아기, 나의 몸과 영혼의 분신인 나의 딸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기를, 남들 다 있는 자식 뭐 그리 유별나냐고, 조금 더 커봐라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무자식이 상팔자다, 이렇게 말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딸아이는 그냥 그대로 인생의 가르침이요 깨달음인 것이다.
소위 어릴 때부터 '범생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착실히 공부해서 별 탈없이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살아 오면서, 어느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우월의식에 빠져서 겸손을 잊고 살아오지 않았나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딸 앞에서는 잘난 치과의사도 아니고, 그냥 한 아기의 엄마일 뿐이라는 것을, 딸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느끼게 된다. 아기가 아프면 밤새 걱정하면서 잠 못 이루고, 제발 아기가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냥 작은 한 엄마인 것이다. 그렇게 아기가 나으면 감사하고 기쁘고, 그러면서 조금씩 겸손과 부드러움과 인내를 배운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내의 연속인 것 같다.
그러면서 새삼 이제는 할머니 티가 나시는 엄마께 너무나 감사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영혼으로 느끼는 사랑과 존경심을 새록 새록 깨닫게 된다.
아기가 아프거나 속상하게 할 때는 "아! 나 때문에 엄마도 이렇게 아파 하셨겠구나" 하며 이제서야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으니 딸 아이의 존재 자체가 가르침, 깨달음이 아니고 무얼까!
어느 유명한 외국의 작가가 그랬단다. 신이 이 세상 구석 구석까지 다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엄마' 라는 존재를 만드신 거라고.....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무언가를 느꼈다.
얼마전 외국의 어느 설문조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로 'Mother'가 뽑혔다고 한다. 우리의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이고, 내가 어떤 헝클어지고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감추지 않고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엄마, 엄마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귀한 존재인 엄마를 알게 해준 아기가 나는 또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아기라 그런지, 이런 느낌이 더 각별하게 드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무조건적으로 엄마를 믿고 의지하는 이 작고 연약한 아기, 나의 짝사랑 그대.
이제는 두 돌이 다 되었다고, 엎드려 세수라도 할라치면, 똥꼬를 간지르며, "엄마, 간지러. 히히...." 하면서 나를 한없이 행복하게 하는 아이. 내가 어느 순간 이 만큼 행복할 수 있을까?
짝사랑, 외길 사랑, 보답 없는 사랑, 아무래도 좋다.
엄마는 네가 있음으로써 존재하고 행복하단다.
아가야. 정말 사…랑…해….
강 현 숙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5.04.18 -
무조건 엄마를 믿고 의지하는
작고 연약한 아기 나의 짝사랑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젊은 시절의 열병 같은 짝사랑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스무살 무렵 그 싱싱하고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던 그 시절에 밤잠을 설쳐가며 누군가를 그리워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치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순수하기도 했던 그 시절.
그저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들.... 그런데!
지금 이십여 년이나 지난 이 나이에, 나에게 그런 짝사랑이 또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화내고 우는 모습도 사랑한다. 때로는 '그'가 나의 단잠을 깨우고, 나를 무척 힘들게도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그저 주기만해도 좋은, 곁에 있기만 하면 좋은, 너무나도 순수한 것이다.
나는 '그'의 생김새, 걷는 모습, 웃는 모습, 소리지르고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도 좋다. 맛있는 음식, 좋은 클래식 음악, 신선한 공기, 나무가 많은 공원.... 어느 곳에 있어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
나는 완전한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나를 다시 달콤한 짝사랑에 빠지게 한 그대, 그는 바로 내 아기, 나의 몸과 영혼의 분신인 나의 딸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기를, 남들 다 있는 자식 뭐 그리 유별나냐고, 조금 더 커봐라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무자식이 상팔자다, 이렇게 말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딸아이는 그냥 그대로 인생의 가르침이요 깨달음인 것이다.
소위 어릴 때부터 '범생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착실히 공부해서 별 탈없이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살아 오면서, 어느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우월의식에 빠져서 겸손을 잊고 살아오지 않았나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딸 앞에서는 잘난 치과의사도 아니고, 그냥 한 아기의 엄마일 뿐이라는 것을, 딸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느끼게 된다. 아기가 아프면 밤새 걱정하면서 잠 못 이루고, 제발 아기가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냥 작은 한 엄마인 것이다. 그렇게 아기가 나으면 감사하고 기쁘고, 그러면서 조금씩 겸손과 부드러움과 인내를 배운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내의 연속인 것 같다.
그러면서 새삼 이제는 할머니 티가 나시는 엄마께 너무나 감사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영혼으로 느끼는 사랑과 존경심을 새록 새록 깨닫게 된다.
아기가 아프거나 속상하게 할 때는 "아! 나 때문에 엄마도 이렇게 아파 하셨겠구나" 하며 이제서야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으니 딸 아이의 존재 자체가 가르침, 깨달음이 아니고 무얼까!
어느 유명한 외국의 작가가 그랬단다. 신이 이 세상 구석 구석까지 다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엄마' 라는 존재를 만드신 거라고.....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무언가를 느꼈다.
얼마전 외국의 어느 설문조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로 'Mother'가 뽑혔다고 한다. 우리의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이고, 내가 어떤 헝클어지고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감추지 않고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엄마, 엄마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귀한 존재인 엄마를 알게 해준 아기가 나는 또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아기라 그런지, 이런 느낌이 더 각별하게 드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무조건적으로 엄마를 믿고 의지하는 이 작고 연약한 아기, 나의 짝사랑 그대.
이제는 두 돌이 다 되었다고, 엎드려 세수라도 할라치면, 똥꼬를 간지르며, "엄마, 간지러. 히히...." 하면서 나를 한없이 행복하게 하는 아이. 내가 어느 순간 이 만큼 행복할 수 있을까?
짝사랑, 외길 사랑, 보답 없는 사랑, 아무래도 좋다.
엄마는 네가 있음으로써 존재하고 행복하단다.
아가야. 정말 사…랑…해….
강 현 숙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5.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