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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산다는 것은...

거름주고 파종하고
수확까지 일련의 과정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어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활기차게 사는 것은 더욱 좋다. 함께 힘차게 사는 것도 최고로 좋다.'
(M.F. 이스트맨)

세월은 나이를 따라 흐른다고 했던가 벌써 개업한지 20년이 되고 보니 강산이 두 번 변했나 보다.
작은 시간이 아닐진데 지난 일들이 모두 얼마전에 있었던 일들 같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정말 바쁘게 살아온 것 같다.
개업할 당시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목수와 단둘이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니스를 칠하고 어설프게나마 실내공간을 꾸미고 진료를 시작했을 때 당시 개업을 준비한 다른 선생님들의 번듯한 인테리어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 설레임과 뿌듯했던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하리라.

개업할 당시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3가지 목표는 있었다.
그 중에 첫번째가 병원 문턱을 낮추어 보겠다는 평소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그 당시 의료보험 시행 초기라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 분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영세민, 군인, 장애인, 분들께는 무료진료를 많이 했으며 영세민과 장애인들의 무치악 틀니 시술은 지금까지 해 오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국가의료 정책이 많이 좋아져서 고마울 따름이다.
당시 수년간 하루 150명 정도 환자를 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죽어도 병원에서 죽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온 것 같다.

두번째로는 장학사업이다.
지금까지 해 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하겠지만 이지역에서 나에게 베풀어준만큼 보답은 못하더라도 성의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남과 더불어 사는 의미가 있을까?
20년 가까이 장학금을 매년 고등학교에 주고 있지만 고맙게 받았다라고 인사를 온 학생은 한번도 없으니 무척 서운하기도 하지만 과연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하겠는가.
처음부터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였으니 말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가끔 놀라곤 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나아지기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지만 꼭은 아닌 것 같다.
각 지역에 수많은 사회단체 모임이나 봉사단체가 많이 있는데 의사들의 가입은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이름 석자만 올려도 환영했는데 말이다.
혹시 진료자체가 남에게 베푼다는 (?) 오류에 빠져 살지는 않은지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하여튼 고통은 나누면 반으로 줄고 기쁨을 나누면 배로 커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기쁨의 대열에 여러분을 초청하고 싶다.

세번째로는 배움에 도리를 찾자는 것이다.
미대지망생이였던 난 문턱에서 낙방하고 난 후 지금은 치과의사가 됐으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미술과 치과는 분명 다른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진료시 엄청난 덕을 보고 있으니 어느 것하나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무척 배워 보고 싶었던 바이올린 때문에 하숙집을 여러번 옮겨 다녀야 했고 국전관람 때문에 새벽기차 타고 오면서 시험공부했던 일….
개업 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6∼7시간 운전하고 대학원 졸업하기까지 일들 모두 주마등처럼 사라져 갔지만 치과의사로서 치과분야에 대한 공부는 말할것도 없이 천직으로 알고 죽는 날까지 정진해야함은 물론이고 관심있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갖는 것도 좋을성 싶다.
한때 괜스레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몇 년동안 학원에 다녔는데 그후 이곳 치과의사회와 일본 쓰루가시 치과의사회 간 상호교류가 여러번 있었으며 그때 능숙하지는 못했지만 통역사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던 일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무언가 배워두면 언젠가 쓰임새가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가지고 노는 것 중 가장 작은 바둑알에서 조금 큰 농구공까지 동그랗게 생긴 물건을 모두 섭렵해야겠다고 작심하고 덤벼들었던 어설픈 추억들이 있고 그덕에 지금은 어느 자리에도 조금 거들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농사 일에 흠뻑 빠져 있다.
강원치우회보 6월호에 잠깐 소개하기도 했지만 거름주고 파종하고 수확까지 일련의 과정들 중 어느 것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속에서 많은걸 배우고 느낀다.
요즈음은 색소폰을 배우려고 학원에 다니고 있다.
몇 년후에는 자신있게 한소리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속에 열심히 불고 있다.

명심보감 권학편의 한구절을 소개 하고자 한다.
「少年易老 學難成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 夢階前梧葉己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나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아직뭇가의 봄풀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어느덧 세월은 빨리 흘러 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벌써 가을소리를 내느니라.

고헌주
80년 조선치대 졸
현)강원 동해시 고헌주 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3.08.04 -

작성자치의신보

작성일2003.08.14

치의신보

| 200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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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닌 것에도 깔깔거리며
10년전 설레는 기분으로
우리가 됐고 하나가 돼 갔다


흔히 말하는 386의 마지막 세대인 87학번으로 졸업 10년차다.
올해 4월.식목일을 앞둔 금요일. 졸업 10년을 기념한 행사를 가졌다.
그 얼마전부터 준비를 위해 실로 오랫만에 남자친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도 받고 회비독촉 전화도 받았다.
그 전화마저도 반가움을 느끼게 했고 잠시나마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20대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오후 진료를 2시간 정도 앞당겨 끝내고 남편과 함께 전주로 향했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아이들을 언니집에 맡기러 함께 동행했다.
그렇게 난 남편, 아이들과의 세계가 아닌 내가 되기 위해 설레는 기분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교수님보다 더 교수님같아 보이는 친구.
배가 많이 나와 정말 아저씨가 돼버린 친구.
결혼을 하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그 모습인 친구.
10년 묻어두었던 웃음을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그 순간은 누구의 아내도, 두 아이의 엄마도. 치과의사도 아닌 예전의 나였다.
별일 아닌 것에도 깔깔거릴 수 있었던 그때의 내가 됐다.
근엄과는 거리가 있는 나지만 그런 웃음을 잊고 지냈었나 보다.
그렇게 우린 예전의 우리가 됐고 하나가 돼 갔다.
모임 후 동기 카페가 생겨 가끔 그곳에 들러본다.
마주한 것처럼 차 한잔을 들고 앉는다.
심은하, 본드걸, 그레이스, 눈비하늘. 실명이 아닌 그들의 글을 읽으며 누구일까.
그 생활을 읽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10년의 세월동안 잊고 지냈었던 친구들의 결혼소식, 개원소식, 아이들 얘기 등을 함께하고 축하하며 그 긴시간을 뛰어넘고 있다.
요즘 한창 성별에 대한 인식이 생겨 남자친구얘기만 하는 7살짜리 아들에게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음도 얘기해 본다.
오늘도 난 나의 친구 41명을 만나러 그 카페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웃으며 즐겼던 이수경 version으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련다.

"얘들아, 안녕"

김영미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3.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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